온라인 韓·日 갈등 시초…'인조이재팬'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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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6. 오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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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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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 개방' 끝난 2002년 네이버서 개설
기계번역 통해 韓·日 누리꾼들 문화 교류
역사·문화 등 국가 갈등의 장 변질…'온라인 한일전'
전문가 "인식 차이 있더라도 문화개방 후 한일 관계 호전"
지난 2005년 '인조이재팬' 시사뉴스 게시판.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독도를 자국 영토로 규정한 일본 역사 교과서 등을 둘러싸고 한일 갈등이 심화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도 양국 누리꾼들 사이의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문화 침탈'에 맞서 한국 문화를 보호하는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양국 움직임이 과거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초기 양상과 유사하다는 시각이 있다. 아직 인터넷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두 나라 누리꾼들은 '인조이재팬' 등 문화 교류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공유했는데, 당시 역사·정치·문화 등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여러 사안을 두고 이른바 '온라인 한일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역사·영토서 문화 갈등으로

앞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교도통신' 등 일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이날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기술이 포함된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과목 교과서 약 30여종을 검정 통과시켰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3월, 독도와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담은 학습지도요령을 고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2022년부터 개편되는 일부 일본 고등학교 사회과목에선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국내 누리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본에 반감을 드러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해 온 일본 정부가 노골적으로 역사 왜곡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독도, 이어도, 7광구 등 포함한 반크 '해양영토 알리기' 홍보 포스터. / 사진=반크


이에 대해 '사이버 외교사절단'을 자처하는 민간단체 '반크'는 미국·영국·유럽 등에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배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일본의 문화 침탈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에 욱일기로 추정되는 문양을 삽입한 일부 일본 애니메이션·영상물 등에 대해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해당 영상물의 배급을 맡은 국내 업체는 문제의 문양을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역사·영토 등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문화로도 번지고 있는 셈이다.

"좋은 일본 문화 받아들이자"…네이버 '인조이재팬' 개설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양국 누리꾼들의 갈등이 과거 대중문화 개방 이후 양상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네이버에서 개설한 '인조이재팬'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1995년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 발언. / 사진=유튜브 캡처


대중문화 개방은 지난 1998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당시 추진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일본 영화·음악·만화 등 대중문화의 직접적인 수입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지난 2002년 참여 정부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이 같은 제안을 완화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수천 년간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온 우리 민족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오히려 (일본문화를) 막음으로 해서 좋은 문화는 못 들여오고 폭력, 무슨 이런 범죄의 나쁜 문화들만 오고 있는 게 우려할 일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당시 국내에서 검색 서비스 등 IT 사업을 벌였던 네이버는 지난 2002년 '인조이재팬'이라는 서비스를 개설한다. 지금은 SNS,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다른 나라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지만,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일본 관련 정보에 접촉하기 힘들었다. 이 점에 착안한 네이버는 양국 누리꾼들의 문화 교류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해당 사이트를 고안한 것이다.

"한국인 더럽게 먹어" vs "일본인 어설픈 뇌구조" 갈등의 장 변질

인조이재팬 도메인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개설됐다. 한국에서는 '일본을 즐겨라'라는 뜻의 인조이재팬(enjoyJapan)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인조이코리아(enjoyKorea)라는 명칭으로 개설됐다. 양국 누리꾼은 해당 사이트에 직접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게재할 수 있었으며, 한국어·일본어 기계번역 서비스를 제공해 실시간으로 상대 언어 글을 번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조이재팬은 네이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갈등의 시작은 '역사 교육'이었다. 양국 누리꾼들은 지금껏 서로 다른 역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배, 임진왜란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을 두고 한일 누리꾼들 사이의 이른바 온라인 한일전이 벌어진 것이다.

당초 한일 문화 교류를 위해 개설됐던 네이버 '인조이재팬'은 결국 갈등의 장으로 변질된 채 서비스 종료됐다.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갈등은 곧 문화 전반으로 확산했고, 두 나라 누리꾼들은 김밥, 라멘 등 음식물을 두고도 "한국인은 정말 더럽게 먹는다", "일본인의 어설픈 뇌구조를 알 것 같다" 등 악담을 퍼부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됐다.

네이버는 지난 2009년 인조이재팬 서비스를 종료했다. 결국 한일 문화 교류를 위해 개설된 사이트는 갈등의 장으로 변질된 채 막을 내리게 된 셈이다.

한일 양국 인터넷 문화에 크고 작은 영향 미치기도

아이러니하게도, 인조이재팬은 훗날 한일 양국 온라인 문화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일본 누리꾼들이 쓰던 유행어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누리꾼들이 웃음소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www'는 인조이재팬을 계기로 국내에 알려졌다. 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뜻인 '팩트(fact)' 또한 인조이재팬에서 확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누리꾼들이 사용하던 '인조이코리아' 또한 일본에 영향을 끼쳤다. 일본 내에서 각종 혐한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한 극우 정치인 '사쿠라이 마코토' 또한 인조이코리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 논객이다.

사쿠라이 마코토가 재특회 회장이던 지난 2014년 실내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현재 일본 극우 정당인 '일본제일당'을 이끄는 그는 지난 2003년 9월 인조이재팬에 쓴 글에서 자신이 한국인을 혐오하게 된 계기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과거 학창 시절 때 한국에서 교환 유학을 온 한국인을 만났는데, 그는 내게 '옛날 일본은 한국에 심한 일만 했다', '일본은 정말 심한 나라다' 등 나로선 절대로 생각을 할 수 없는 말을 했다"라며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싫게 되는 나라"라고 했다.

전문가 "문화개방 이후 두 나라 국민들 사이 좋아져"

그렇다면 두 나라 국민들은 앞으로도 갈등의 골을 좁힐 수 없는 걸까. 전문가는 지난 1998년 문화 개방 이후 두 나라 민간 사회의 관계는 급격히 호전됐으며, 앞으로도 더욱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인식의 차이는 좀 있더라도, 김대중 정권 문화개방 이후 한일 국민들의 사이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민간 단위에서는 문화 교류가 더 활발해졌고, 두 나라의 콘텐츠가 상호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양국 문화의 증진을 막는 것은 정부 간 갈등으로,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외교 현안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되는 문제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사는 어쩔 수 없이 한일 양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면서도 "두 나라가 서로 진실하게 대하고 이 문제를 청산하면, 현재의 양국 젊은이들이나 혹은 다음 세대에서 주체적으로 새로운 우호 관계를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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