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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재가 없는 이유 "코딩 몇 줄로 답 내는 게 아니라 기본원리 아는 인재 필요"

이치근 토론토대 산업공학과 교수 인터뷰

심층신경망 원리 모르고도 코딩 몇 줄로 답은 낼 수 있어

국가 AI 역량 높이는 인재와는 거리 멀어

기초 연구와 산업계 사이의 중용 필요해

이치근 토론토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대 세인트 조지 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통해 국가적인 AI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본기에 충실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2014년 응용수학을 바탕으로 최적화 의사 결정을 연구하던 과학자가 난제에 가까운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만났다. 한 부동산개발 업체가 캐나다 토론토의 한 고층 콘도미니엄을 분양하면서 400여개 가구의 분양 가격을 정하는 과제였다. 가격은 각 가구의 내부 구조뿐만 아니라 방의 갯수, 층수, 전망, 채광 방향 등 여러 복합적인 변수에 따라 각기 다르게 가격 설정을 해야 했다. 최대 매출을 목표로 하되 수요가 특정 가구로 몰리지 않도록 적절한 가격 설정이 필요했다. 당시 세운 가격 설정 도식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면 컴퓨터를 만년이나 돌려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음 해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s)을 이용한 학습 방식인 딥러닝을 알게 돼 이를 적용하자 인공지능(AI)이 한 시간 반만에 답을 내 충격을 받았다. 15년차 교수였던 그에게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이후 전공 분야인 최적화 의사 결정에 딥러닝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석·박사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전공 전환을 이뤄낸 이치근 토론토대 산업공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이치근 토론토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대 세인트 조지 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통해 국가적인 AI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본기에 충실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지난 달 중순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이 교수는 “인공지능(AI) 연구 바람이 들불 번지듯 일어나고 있는데 기초적인 작동 원리까지 이해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접근 방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요새는 코딩을 다섯 줄만 작성해도 심층신경망(DNN·Deep Neural Network)을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DNN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답을 낼 수 있는 수준이 됐지만 내부 작동 원리를 모르는 채 훈련된 연구자들을 AI 인재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본기 없이 AI를 산업에 적용하겠다고 하면 이는 모래 위에 쌓은 성이고, 국가 차원의 AI 역량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토론토는 딥러닝의 부흥을 이끈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를 따라 전 세계에서 AI 연구자들이 모여들어 AI 메카로 자리 잡았다. 한 해에만 일대 대학에서 AI 분야 박사 600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구글을 비롯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등 빅테크 뿐만 아니라 삼성과 LG도 토론토를 AI 인재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 교수는 토론토가 AI의 메카로 성장하는 데는 토론토대의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를 비롯해 기본기를 중시하는 연구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치근 토론토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대 세인트 조지 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통해 국가적인 AI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본기에 충실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 교수 15년차에 딥러닝을 연구해 전공 분야의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방향을 바꿨을 때 쉽지 않겠지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7년이 되어가는데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 2~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전환 도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나다에서 기계 학습(머신 러닝)을 비롯한 컴퓨터 과학 분야는 공대가 아닌 기초 과학에 속합니다. 제가 있는 산업 공학은 공대 내에서도 기초 과학에 가까운 분야고요. 수학을 많이 쓴다는 점도 통해서 비교적 접점이 많았습니다.

- 아무래도 토론토대가 딥러닝의 메카인 만큼 AI를 연구하거나 방향 전환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 딥러닝의 메카라고 하는 토론토대조차 머신 러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특화해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은 소수입니다. AI 연구가 유행을 끌고 있다 보니 학생들도 먼저 머신 러닝 연구를 하고 싶어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니 등 떠밀리듯 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 - 한국도 AI 연구가 유행처럼 자리 잡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유념해야 할까요.

  • : 머신러닝도 가게에 파는 완제품처럼 도구를 가져다 쓰는 방향으로 활용하다 보면 자신만의 내재화된 역량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심층신경망(DNN)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이렇게 명령하면 이러한 답이 나온다’ 정도 수준에서 배운 인재들은 AI 인재로 보기가 어렵죠. 기초적인 부분을 내부 작동 원리까지 이해하는 부분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고요. 이는 곧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 역량과도 직결됩니다.




  • - 국가 차원의 AI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본 요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 말씀드린 것처럼 기초 연구에 대한 트레이닝을 간과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하고요. 기초 연구와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중용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딥러닝의 기초를 쌓은 제프리 힌턴 교수 한 명과 이를 서비스에 잘 적용한 구글과 같은 회사 하나가 나오는 게 필요한 것이죠. 기본기 없이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AI 연구는 모래 위에 쌓은 성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를 테면 삼성전자가 메모리칩을 몇 나노로 개발하는지 등이 중요한 관심사인데 장기적으로 보면 기초 과학 경쟁력이 없다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기본 토양을 다지는 차원에서 투자를 하고 컴퓨터 공학 등에 대한 트레이닝도 피상적인 부분 위주보다는 기본을 다지는 트레이닝이 필요합니다.




  • - 캐나다에서 기초 연구와 산업 사이의 중용을 이룬 사례로 말하면 도심 내 이노베이션 허브인 마스 디스커버리 디스트릭트(MaRS)가 하나의 사례가 될까요.

  • : 중용도 일종의 최적화라 문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최적의 솔루션은 극단에 존재하지 않다는 게 지론입니다. 마스 디스커버리 디스트릭트(MaRS) 같은 경우 학계의 좋은 아이디어를 상용화로 가지고 나가는 임무를 맡고 있고요. 랩에서 머물 수 있는 연구를 세상에 나가 빛을 보게 하는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또 토론토 최대 AI 연구단체인 벡터 연구소는 딥러닝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 및 연구 리더십을 가져가기 위한 인재 거점입니다. 이 같은 중용을 위한 툴(도구)을 활용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캐나다 토론토대 세인트 조지 캠퍼스 내 ‘캐내디언 마이닝 명예의 전당’ 건물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 - 한국의 AI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 사실 AI 역량은 한국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황성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 등 세계 수준의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삼성이나 LG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요. 한국의 AI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금적인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자원에 컴퓨팅 자원에 투자를 하는 게 정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삼성, LG,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컴퓨팅 인프라를 갖춰주는 게 중요합니다. 딥러닝의 기본 철학이 똑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 똑똑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결국 얼마나 똑똑해지는가는 컴퓨팅 능력에 달린 것이기도 하죠. 이건 정부에서도 하기 힘들고 학교도 몇천억 규모의 투자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최근 머신러닝의 선도적인 리더십은 구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앞서 나가는 요인 중 하나는 컴퓨팅 시스템에 대한 어마어마한 수준의 투자입니다.



- 최근 한국에서는 AI 인재를 유치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고민입니다.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 AI만 파도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커리어 모델이 생기면 잘 하는 학생들이 의대 안 가고 AI 연구로 갈 겁니다. 구글의 고급 엔지니어들 평균 연봉이 50만 달러(약 6억5000만원)입니다. 재능이 많은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의사가 되는 것 만큼이나 엔지니어가 되는 선택지를 우선 순위로 둘 수 있는 것이죠. AI 연구자나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가 높아지면 해외에 있는 분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도 늘어날 겁니다. 사실 해외의 시스템을 경험한 이들이 국내에 섞이는 게 좋은 이유는 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다른 시스템이 섞이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캐나다 토론토 내 최대 이노베이션 허브인 마스 디스커버리 디스트릭트(MaRS) 전경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 - 토론토대에서 경험한 연구 환경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 : 연구자들에게 학교에서 설정하는 기대 수준도 연구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기대 수준 자체가 낮게 설정돼 있으면 연구자가 의욕을 가지기가 어렵죠. ‘우리 대학의 연구 기준은 이것이다’하는 일종의 스탠더드(기준)를 좀 더 높게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부문 자체가 학풍 또는 그 집단의 문화가 되기 때문이죠. 한국 대학은 박사 학위 논문 심사 통과도 보면 대부분 통과를 해주는 게 한 예입니다. 기준을 높게 설정하면 어떤 분야든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많이 발전을 했지만 여전히 기대 수준을 높이는 부분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 - 토론토가 AI 거점이 된 데 있어 정부의 역할도 꼽아주신다면요.

  • : 기본 펀딩에 해당하는 NSERC 프로그램이 캐나다의 98%에 달하는 교수님들이 지원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연구 주제에 대한 제약도 없습니다. 다만 일인당 지원 받을 수 있는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장단점이 있지만 제약 없이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장기적인 연구도 과감히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믿음과 고집이 있으면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하게 연구를 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져 있는 셈이죠.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님은 당시 부교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정교수가 아닌 부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데 스트리클런드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의 기초 연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같은 캐나다의 연구 펀딩 시스템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머신러닝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 : 사실 머신러닝이 엄청난 붐을 이루고 있고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힌턴 교수도 범용 인공지능은 가까운 미래에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저는 좀 더 낙관적입니다. 저는 강화학습 분야에서 특정 알고리즘이 일반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의사 결정 문제를 사람이 많이 개입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범용 인공지능에 다가가도록 하는 게 제 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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