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먹는데도 일본에 돈 낸다고"..10년간 종자로열티 1300억원

정혁훈 2021. 11. 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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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품종 키워라"..민·관·농 함께 개발 결실
주요 농산물 해외품종 의존
10년간 로열티로 1300억 내
대부분 일본품종이던 고구마
농진청, 생산자단체 손잡고
토종 품종 '소담미' 개발
수확량 많고 당도 뛰어나
현대百·세븐일레븐도 합세
소비자들 입맛 잡기 나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전국 고구마 생산자들 단체인 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와 손잡고 개발한 `소담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날이 추워지면서 생각나는 길거리 간식이 있다. 바로 군고구마.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장작불에 고구마를 굽는 리어카 노점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리어카가 사라졌다. 아마도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점이 줄어든 탓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가끔은 노릇한 군고구마 생각이 간절하다. 겨울철이 돼야 고구마가 등장하는 건 왜일까.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까먹어야 할 정도로 뜨거운 군고구마가 겨울에 제격인 측면도 있겠지만 수확철과 숙성기와도 관련이 깊다. 고구마는 대략 6월에 싹을 심어서 9월부터 10월에 수확을 한다. 그런데 고구마는 수확 후 바로 먹는 것보다 섭씨 12도 전후 온도에서 두세 달 숙성을 해야 당도가 높아지고 맛이 좋아진다. 대략 겨울 초입부터 본격적인 고구마철이 시작되는 배경이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고구마는 대부분이 일본 품종이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가장 많이 찾는 꿀고구마나 호박고구마 등 주력 상품 중 80~90%가 일본 품종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이 꼭 고구마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농산물 주요 품목에 대한 외국산 품종 점유율을 따지면 72.5%에 달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대표적인 겨울 과일인 귤은 일본 품종 점유율이 2019년 기준 97.5%에 이른다. 포도는 95.9%, 배는 85.8%, 사과는 79.8%, 양파는 70.9%가 외국산 품종으로 재배된다. 외국산 품종의 가장 높은 비중은 일본산이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독립은 했지만 종자독립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국산 품종 고구마인 `소담미` 생산과 판매를 늘리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자 한자리에 모인 농진청, 농가, 현대백화점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 신승호 사무총장, 이은규 이사, 김남익 회장, 유택근 농진청 농촌지도관, 현대백화점 김경년 선임 바이어, 김동욱 차장. [정혁훈 기자]
이천일 농촌진흥청 농촌지원국장은 "외국산 품종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가 12개 주요 농산물 품목에 대해 10년간 해외에 지급한 품종 로열티가 1357억원에 달한다"며 "국산 품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로열티가 같은 기간 26억원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품종(종자) 로열티 적자가 10년간 1331억원에 이른 셈"이라고 말했다.

국산 품종의 점유율을 늘려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 문제가 아니다. 농업의 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국산 품종을 많이 개발해 농가에서 재배하게 하고, 소비자들이 국산 품종 농산물을 찾게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 다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산품도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품을 신제품이 밀어내기가 힘들지만 농산물은 그보다 수십 배 더 어렵다. 입맛을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산 품종의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유택근 농진청 농촌지도관의 설명이다. "농진청이나 각 도 산하 농업기술원에서는 다양한 국산 품종을 개발합니다. 그런데 이미 외국산 품종으로 농사를 잘 짓고 있는 농민들은 낯선 국산 품종을 심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국산 품종으로 재배한 농산물이 시장에 나오면 기존 제품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립니다. 그러다 보니 유통업체들이 가격을 잘 쳐주지 않고, 그 결과 농민들이 재배를 꺼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진청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품종을 개발해 농민에게 보급하는 것에만 그칠 게 아니라 농민이 재배한 신품종 농산물이 백화점이나 편의점 같은 유통업체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연계해 주는 역할까지 농진청이 맡아 보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국내 육성품종 유통 활성화 종합 추진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농진청은 우선 현대백화점, 세븐일레븐 등 유통업체들과 다양한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대표적인 작물이 바로 고구마다.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이 꿀고구마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일본의 베니하루카 품종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품종 '소담미'를 개발한 덕분이었다. 당도와 맛, 식감, 영양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실험실이 아닌 현장이다. 농진청은 전국 고구마 생산자들 단체인 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와 손을 잡았다. 연합회 측에 새로 개발된 소담미 품종을 보급한 것. 중앙회는 신품종에 관심 있는 농가를 선발해 올 상반기 소담미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김남익 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장이 솔선수범 참여했다. 지난달까지 수확을 마친 소담미 고구마 농사는 대성공이었다.

경기도 여주에서 30만평 밭에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는 김 회장은 "일부 밭에서 소담미를 재배했는데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나왔다"며 "고구마가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많고 모양도 좋을 뿐만 아니라 당도와 맛에서도 기존 일본 품종을 넘어서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소담미 고구마 농사를 지은 농가가 10여 곳이지만 결과가 좋아 내년에는 최소 수백 농가 이상이 소담미 고구마를 심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제 남은 것은 유통인데, 현대백화점과 세븐일레븐이 구원투수로 나선다. 두 유통업체는 전남 해남에서 수확한 소담미 고구마를 매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특별 기획전 형태로, 세븐일레븐은 매장에서 군고구마로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김경년 현대백화점 선임 바이어는 "다음달 중순에 소담미 고구마를 백화점 전체 매장에서 기획전 형태로 판매할 계획"이라며 "이미 신선식품 바이어들의 시식에서 품질과 맛에 대한 검증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고객 반응이 매우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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